SVB(실리콘밸리 은행)의 사태 전말은 무엇인가
지난 주말부터 미국이 심상치 않습니다. '뱅크런'이라는 단어까지 나오며 시장을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금융업계에서 '뱅크런'이라는 단어는 아주 위험한 의미입니다. 아주 희귀하게 예금에서 위험이 드러나 은행을 파산케 한다는 말인데 그 원인은 예금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결과가 예금인출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그럼 도대체 SVB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SVB는 주로 벤처기업의 예금을 예치하고 대출을 해주며 경영하는 미국 16위 정도 되는 은행입니다. 미국에는 4천여 개 정도 되는 은행이 있으니 제법 큰 규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은행에 갑자기 모든 고객들이 돈을 인출하는 사건이 지난주 발생했습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로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졌고 결국 파산까지 가는 지경이 이르렀던 것입니다.
SVB는 아주 단순한 구조의 은행입니다. 파생상품 같은 것은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기업이나 개인에게서 예금을 예치하고 대출을 해서 예대마진으로 영업하는 은행입니다. 오히려 예치를 잘해서 예금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SVB는 여윳돈으로 국채에 투자를 합니다. 은행은 금리가 오르는 시기에 헤지수단으로 안전자산인 국채에 투자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SVB는 국채 투자 비율이 50%가 넘는 방만한 경영을 했던 것입니다. 미국 메이저 은행은 그 비율이 30% 내외입니다.
국채가 안전하다고는 하지만 국가의 부채비율을 잘 살펴봐야 합니다. 2008년 이후 큰 교훈을 얻은 미국은 가계부채나 기업부채를 잘 관리해 왔습니다. 하지만 국가 부채가 나머지 부채들을 상회할 정도로 위험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의문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국채를 많이 투자한 SVB가 손실 없이 내 돈을 돌려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의문은 연준이 끊임없이 금리를 올리면서 느낌표가 되었고 국채가 계속 손실을 보게 되자 SVB의 예금주들은 참지 못하고 예금을 인출해 버립니다.
이것은 도미노 현상의 첫 번째 조각인가
네, 맞습니다. 이것이 시작입니다. 곧 두 번째 희생양이 나왔습니다. 이번에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크레디트 스위스(CS)'라는 은행의 부실입니다. 사실 크레디트 스위스의 부실은 작년부터 불거져왔던 사안입니다. 워낙 복잡한 상품을 취급하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규모의 은행이다 보니 그 사안이 급박합니다. SVB와는 그 비교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유럽은 물론 중앙아시아의 사우디까지 대주주로 있는 공룡급의 은행입니다. 부도 지표를 나타내는 'CDS'가 2008년보다 무려 두 배 이상 높습니다. '뱅크런'이 시작됩니다.
작년에 이런 현상이 있었지만 대주주 사우디가 자금을 급조하면서 일단락되었습니다. 하지만 SVB로 놀란 가슴이 다시 CS로 향하자 사우디는 침묵합니다. 지난밤 외국 주식을 투자하시는 분들은 잠을 못 주무셨을 겁니다. 필자도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관련 뉴스를 제일 먼저 찾았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이번에 나타난 구원투수는 스위스 정부였습니다. CS는 스위스 내에서 두 번째로 큰 은행입니다. 만약 이것이 무너진다면 2008년의 재림이 될 수 있습니다. 국제 지표는 혼조로 마감했습니다만 금융기관이 속한 주가 지표는 하락 마감했습니다. 아직 금융기관은 믿을 수 없다는 방증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다시 금융위기가 오는 것인가
여러분은 현재의 사태에서 2008년을 떠올리실 겁니다. 미국의 베어스턴스가 파산하면서 시작한 금융위기가 오버랩되기 때문입니다. 리먼 쇼크라고 해서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을 떠올리시겠지만 시작은 베어스턴스였습니다. 먼저 작은 은행이 파산하고 그다음 공룡급의 은행이 차례로 넘어졌던 그 때와 너무나 비슷합니다. 그 공포가 지금 다시 우리를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경제를 왜 공부하는 것일까요? 사태의 원인과 결과를 공부하다 보면 반드시 얻게 되는 교훈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시장이 비이성적으로 폭주하고 있지만 돈은 냉정합니다. 다시 냉정하게 사태의 내면을 쳐다봐야 합니다.
2008년 당시 금융위기의 발단은 무분별한 대출이었습니다. 규제와 신용평가 없이 스트리퍼에게 별장을 살 수 있게 대출을 마구마구 해주었습니다. 심지어 강아지 이름으로도 대출이 가능했습니다. 그 당시의 모든 이들이라고 할 만큼 개인마다 집이 여러 채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스트리퍼의 수입이 대출이자를 막을 만큼 막대했을까요? 강아지가 대출이자를 갚을 돈을 벌어왔을까요? 곧 이자를 갚지 못하고 집은 은행으로 넘어갑니다.
하지만 그 집을 살 사람들이 없습니다. 전부 빈집입니다. 은행은 이 골칫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들의 채권을 결합한 이상한 파생 상품을 내어놓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또 그것에 투자를 합니다. 부실이 부실을 낳아 괴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SVB 사태는 부실한 대출과는 별개입니다. 물론 방만한 경영이 단초가 되었지만 채권에 투자했기 때문에 만기 때까지 보유하고 있는다면 원금이 손실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당장의 국채 수익 손실이 눈에 보이니까 예금을 빼버린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골머리를 앓는 것은 이렇게 되면 연준의 고민이 깊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연준은 이미 실기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데 갑자기 블랙스완이 등장해서 많은 비난에도 꿋꿋이 지켜오던 금리인상을 단행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물가를 잡는 것이 지상과제였던 것이 시장참여자들의 불신을 만회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당장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습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는 산으로 갑니다. 이 사태를 구원해 줄 연준이 어떤 결심을 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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