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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 인물 이야기

KFC 창업주 커넬 샌더스의 네버 기브 업(절대 포기 안 해)

by 럭키대디2727 2023.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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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넬-샌더스-등신상

KFC(캔터키 프라이드 치킨)의 창업주 커넬 샌더스(1890 ~ 1980)를 여러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바로 KFC 출입문에 등신상으로 자주 접했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백발과 흰 수염, 뿔테 안경을 쓴 흰 정장 차림의 호호 할아버지가 우리가 아는 그 사람입니다. 기업의 마크가 아닌 창업주가 기업의 심볼로 대표되는 사례는 보기 드문데요. 그의 이미지가 친숙함과 마스터피스(명인)를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그의 성공사례도 만만찮은 실패 끝에 겨우 이뤄낸 점이라는 것을 간과해선 안됩니다. 어떤 여정으로 사업의 성공에 도달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불행한 가정환경과 강제적인 독립 생활

기차-증기기관-석탄

커넬 샌더스의 어린 시절은 불우함 그 자체였습니다. 성실한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세 형제중 맏이로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어느날 수면중 급사하는 바람에 편모 아래에서 어린 나이에도 두 동생을 건사하며 살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불행은 새아버지가 생기면서 시작됩니다. 새아버지는 폭력이 심했고 세 형제를 마뜩찮게 생각했습니다. 폭력을 일삼다 마침내 형제들을 공장으로 내쫓아버립니다. 그의 나이 겨우 12살이었습니다.

 

샌더스는 불우한 환경을 겪었지만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돈을 벌기위해 무엇이든 닥치는대로 일을 시작합니다. 학교를 중퇴하고 일을 시작한 곳은 철도회사였습니다. 그곳에서 기차에 들러붙은 석탄재를 떼어 내는 일부터 시작하여 보일러에 석탄을 때는 일까지 승진(?)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일은 동료와의 불화로 그렇게 오래 가지 못하고 여러 일을 전전긍긍하게 됩니다. 이 때부터 형편이 어려워지고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떠나버립니다.

 

불우한 가정환경만큼 운이 없는 청,장년 시절의 샌더스

청년 시절의 샌더스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강을 건너게 해주는 페리선박 사업에 착수합니다. 그의 사업은 성공하여 나름 큰 돈을 손아귀에 쥐게 됩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하였습니다. 그 돈으로 투자를 했지만 투자에 실패하게 되고, 더군다나 강 사이를 잇는 다리가 생기자 페리선박 사업도 망하게 됩니다.

 

그는 다시 회사에 취업하여 샐러리맨으로써 일을 이어나가지만 이번에는 다리가 무너져 차가 강에 빠져 자칫 목숨을 잃을 뻔 하기까지 합니다. 샌더스에게 일은 늘 연결되었지만 그 끝이 늘 실패로 끝이 납니다. 그렇게 40대까지 어떤 정착도 못하게 됩니다.

 

 

다시 찾아온 기회 그곳은 바로 캔터키 주

커넬-샌더스-직접-조리-관리

40대에 들어선 샌더스는 캔터키 주에서 주유소를 운영하게 됩니다. 다행히 여행자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서 장사는 잘 되는 편이었습니다. 여기서 샌더스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덧붙입니다. 샌더스는 평소 요리를 좋아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편모 밑에서 자란 경험때문이었습니다.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일을 하러 나가면 동생들을 건사해야 했으므로 요리를 곧잘 했다고 합니다.

 

그 경험을 살려 주유소 한켠에 작은 까페를 열게 됩니다. 자신이 개발한 요리 중에 프라이드 치킨이 있었는데 그것이 대박이 납니다. 여행자들의 입소문이 나자 사람들은 더욱 몰리게 되고 작은 규모로서는 감당이 되지 않아 주유소를 정리하고 정식 레스토랑과 모텔을 열게 됩니다.

 

그런데 그의 불운은 끝나지 않습니다. 식당과 모텔에 불이 납니다. 그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맙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1009번의 도전

커넬-샌더스-캔터키-프라이드-치킨

이쯤되면 누구라도 포기하고 싶어질 것 같습니다. 불운의 아이콘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제 그의 나이는 60대가 되었는데 빈털털이인 그는 노후 걱정이 태산입니다. 그의 수중에 있는 것이라곤 프라이드 치킨의 레시피 뿐입니다.

 

그는 이 레시피를 전국의 식당에 판다면 그 로열티로 노후를 대비하면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그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재혼한 아내와 식자재와 도구를 자동차에 싣고 전국을 누빕니다. 무려 천 곳이 넘는 식당을 다니며 제휴를 제안하지만 번번히 거절당합니다.

 

그러나 샌더스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1,009번째 제안을 드디어 성사시킵니다. 그 때 그와 동업자는 자신의 치킨 요리 이름을 '캔터키 프라이드 치킨' 이라고 짓게 됩니다. 첫번째 제휴 식당의 장사는 이 치킨 요리로 인해 급격히 매출이 오릅니다. 그 덕에 전국 매장이 수백개로 늘어나면서 성공 신화를 쓰는가 싶었습니다. 그러나 방대해진 기업을 관리하지 못해 어려움을 느낀 샌더스는 전문 경영인에게 2백만 달러에 기업을 팔고 맙니다. 그의 나이 70이 가까워지자 체력에도 어려움을 느낀 것입니다.

 

현재 KFC는 전 세계에 2만개가 넘는 프랜차이즈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만약 샌더스가 기업을 매각하지 않았다면 현재 가치는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운이 터지기 시작한 시점이 황혼기였으므로 그것으로 만족했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2백만 달러라면 아주 큰 돈이었습니다. 어쨌든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유산과 얼굴을 세계에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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