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력으로 대표되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일본입니다. 제조업 강국, 미세공정, 장인 등등 그 수식어가 늘 일본을 지칭합니다. 그런데 미세공정과 장인정신, 기술력이 있음에도 왜 일본은 현재 반도체 시장에서 소외되고 있을까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일본의 영광스러웠던 반도체 황금시대와 더불어 그 산업이 몰락한 이유에 대해서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960년대 반도체 패권은 미국이 쥐고 있었다
진공관, 트랜지스터, 집적회로 등 컴퓨팅 회로에 역사에 늘 등장하는 부품들이 있습니다.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에 걸쳐 영국과 미국의 물리학자들에 의해 개발된 이 부품들은 현대 컴퓨팅 시스템에 초석이 됩니다. 이와 같은 기술은 세계대전을 경험하면서 노하우가 축적되는데 그것을 가장 잘 활용한 나라가 바로 미국입니다.
미국은 전쟁을 통해 습득한 기술을 190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크게 발전시킵니다. 인텔, TI(텍사스 인스트루먼트)등이 집적회로(IC)를 개발하여 트랜지스터보다 월등한 성능을 보여줍니다. 이 때 많은 회사들이 샌프란시스코 팔로알토에 모여 회사를 창업했는데 그곳이 바로 그 유명한 실리콘 밸리입니다. 실리콘은 반도체의 재료가 되기 때문에 그렇게 명명되었습니다.
그리고 D램을 제일 먼저 개발한 나라도 미국입니다. 바로 인텔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개척자가 됩니다. 이와 같이 1960년대 당시만 해도 미국은 압도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세계 반도체 공급의 90%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한국에도 미국의 반도체 생산공장이 지어졌을만큼 이제 반도체는 첨단 산업에 절대적인 조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기술력에 너무 도취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도 감히 미국과 같은 기술력을 가지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대전을 경험한 나라는 또 있습니다. 바로 일본입니다.
1980~90년대 전세계 반도체 패권은 일본이 쥐고 있었다
일본은 태평양 전쟁 중 미국 본토를 공격한 유일한 나라답게 전쟁에서 취득한 기술력이 상당했습니다. 특히 제조업에 강점을 보이는데 탱크를 만들던 기업은 자동차와 중기계를 만들고, 화약을 만들던 기업은 타이어와 화장품을 만듭니다. 그렇게 일본은 제조업으로 패전 후 나라를 재건하는데 힘을 쏟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동에서 전쟁이 발발하면서 2차례의 오일 쇼크를 겪습니다. 일본은 이 위기를 겪은 뒤 원유에 종속된 산업에서 탈피할 방법을 찾습니다. 일본이 타겟으로 삼은 것은 바로 미국이 맹신하던 반도체 산업입니다. 당시 미국의 반도체 수율은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수율이란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웨이퍼(원판)에서 칩으로 사용할 수 있는 회로 생산량을 말합니다.
그런데 일본은 자신들의 기술력으로 그 수율을 80%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 때까지도 미국은 수율을 신경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기술을 과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암약하던 일본은 마침내 같은 성능의 반도체를 자신들이 목표하던 수율로 생산해냅니다. 이 말은 같은 성능의 반도체를 4배 이상의 원가절감으로 생산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결국 미국은 일본에게 반도체 산업의 점유율 대부분을 넘겨주고 맙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일본은 세계 10대 반도체 기업 중 무려 6곳이 차지하게 됩니다. 그 면면은 도시바, 히타치, 후지쯔, NEC, 미쯔비시, 마쯔시타 등입니다.
일본도 미국의 전철을 그대로 밟는다
일본은 첨단화된 반도체를 기반으로 더욱 소형화된 가전 기기들을 만들어 냅니다. 카메라, 휴대용 오디오, TV 등 전세계는 일본의 제품에 열광합니다. 더군다나 일본의 엔화는 달러에 비해 아주 약세를 구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출로 비싼 달러를 벌어들입니다. 반도체 패권에서 이긴 결과가 수출호조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에게 뒤통수를 맞은 미국은 가만있지 않습니다. 그 유명한 플라자 호텔 합의가 이 때 이뤄집니다. 기술 패권을 빼앗긴 것도 모자라 미국을 상대로 달러를 마구마구 벌어들이니 미국은 일본 길들이기에 나섭니다. 플라자 호텔 합의를 통해 엔화를 강제적으로 절상시키고, 일본 수출 물품에 대해 관세를 대거 물립니다.
이 때부터 일본의 수출 수익성은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때 일본이 했던 그대로 후발주자가 나타납니다. 바로 한국과 대만입니다. 한국과 대만은 일본의 무수히 많은 반도체 공정을 아주 많이 건너뜁니다. 당시 반도체 공정은 20가지 공정이 필요했는데 후발주자들은 공정을 줄이면서 수율이 낮아지는 대신 속도를 올려 생산량을 늘리는데 집중합니다.
그리고 일본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기술을 과신했습니다. 어느 수요처가 요구해도 오래 쓸 수 있는 반도체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설정합니다. 그들 특유의 장인정신이 발휘되는데 이것이 그들의 발목을 잡습니다. 왜냐하면 내구성을 잡겠다고 성능을 등한시한 것입니다. 한국과 대만은 일본이 장인정신을 발휘하는 사이 성능 개발에 중점을 둡니다. 불과 수개월 사이에 성능이 2배씩 업그레이드된 반도체가 쏟아져 나옵니다. 같은 가격에 성능이 더 좋은 제품이 한국과 대만에서 생산되니 일본의 반도체는 점점 외면받기 시작합니다.
미국은 수율을 등한시했고, 일본은 성능을 등한시한 결과가 현재 반도체 패권이 한국과 대만으로 양분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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